[신세계만평] 의사는 왜 분노하는가

2024-06-20     신현호 편집인대표

대한민국에 상상도 못 할 대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누가 발칙하게나마 이런 상상을 해보기라도 했을까 싶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의료개혁은 국민 대다수가 동의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의료개혁이 아닌 의료대란의 원인을 촉발한 쪽은 정부라는 생각이 듭니다.

정부의 의료개혁이 출발부터 일방적이었습니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것입니다.

만사가 그렇듯 순리대로, 합리적으로 해야 했습니다.

지난 정부에서 이뤄내지 못한 문제점이 어디에 있었느냐부터 시작했어야 했습니다.

의료계 전문가들을 만나 의대 증원 난제에 대해 짚어보고 실제 사정 등을 세심히 살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은 지난 22대 총선 승리를 위해 무리하게 몰아붙인 게 지금의 대혼란을 야기하고 말았습니다.

대통령은 검사 출신답게 의료계를 처음부터 잘못된 집단처럼 몰아붙이며 갈라치기를 하고 있습니다.

의대 증원을 원하는 국민의 여론을 등에 업고 칼을 빼 들었지만 무리수를 둬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허둥대고 있습니다.

국민은 고통스럽습니다.

급기야 환자단체는 외국 의사라도 들여오도록 해달라고 아우성입니다.

환자 가족을 둔 그들은 일각이 여삼추이니 오죽하면 그럴까요.

우리나라는 암 환자 생존율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알려져 있는 의료 선진국입니다.

의료계는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올해 1천500명, 내년에는 2천명을 증원하는 것은 의료의 질이 우려된다는 입장입니다.

증원에 따른 환경을 먼저 만들어야 하는데 급하다고 밀어붙이는 건 순서가 잘못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어진 기술이라는 뜻의 '인술(仁術)'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부는 의사들이 어진 마음으로 인술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의사들도 어떤 경우라도 환자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의사들은 아픈 환자를 정성을 다해 돌보고 싶은 마음뿐일 것입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정부는 의료계를 압박만 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말을 듣지 않으면 처벌할 수밖에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제약회사 리베이트를 받은 의사를 수사하겠다고 윽박지르고 있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집단 휴진에 대해 조사를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습니다.

이런 방법은 근본적인 개혁을 이뤄낼 수 없습니다.

의사들이 '애고 무서워라'하면서 납작 엎드리고 돌아올리 만무합니다.

오히려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의 질을 떨어뜨려 국민에게 피해가 갈 수 있습니다.

국민은 절대 아프지 말아야 하고, 아픈 환자는 이런 현실을 언제까지 반복해야 하는지 답답해 멀쩡한 가슴만 쿵쿵 칩니다.

정부가 포용력을 가지고 의료계를 끌어안아야 합니다.

의사들도 대화로 풀 생각을 해야 합니다.

국민을 위해, 신음하고 있는 환자들을 위해 말입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어떻게 개선을 하면 좋을지를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엉킨 실타래를 풀 듯 차분하게 해결책을 찾아야 합니다.

정부가 의사들이 병원에 돌아올 수 있는 해법을 하루빨리 찾아주기를.

중환자나 어린 환자들을 위해서라도 순리대로 합리적으로 말입니다.

의사들이 왜 거리로 나와 분노하는지 헤아리지 못하면 해결책은 없어 보입니다.

의사가 없으면 국민의 생명과 미래 건강을 누구도 지켜줄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은 의료 선진국이지만, 정치는 후진국 수준이라는 비아냥이 괜히 한숨이 나오게 하는 건 아닌 듯합니다.

※ '신세계만평'은 현실의 부정적 현상이나 모순 따위를 풍자하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