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금 고갈' 과도한 공포 경계해야…소득보장 강화 목소리도
국민연금 5차 재정추계에서 연금 기금의 소진 시점이 2057년에서 2055년으로 2년 앞당겨진 것은 심화하는 저출산·고령화가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
저출산·고령화로 인구 구조상 돈을 낼 가입자는 줄어드는데 연금을 받는 노령 인구와 연금수급 기간은 늘어나 기금 소진이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될 것이란 예측이 나왔다.
여기에 경제성장이 더뎌지고 기금투자 수익률이 크게 오를 요인도 없어 연금 기금의 지속 가능성에 빨간불이 켜졌다.
◇ 내년 합계 출산율 0.7명…보험료 낼 사람이 없다
국민연금 재정추계는 재정계산위원회 산하 재정추계 전문 위원회가 인구, 경제변수, 제도변수 등 주요 가정에 따라 기본 시나리오를 설정하고, 현 연금 제도가 유지되는 것을 전제로 향후 70년간의 재정수지를 추정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번 추계에는 통계청의 '2021년 장래인구추계'의 중위가정이 활용됐다.
합계 출산율은 올해 0.73명, 내년 0.70명까지 하락한 뒤 반등해 2046년 1.21명까지 완만하게 회복한다는 시나리오다. 이같은 가정에는 코로나19로 연기된 결혼이 이뤄지고 2차 에코세대(한해 출생아수 70만명대)인 91년생의 30대 진입 등이 고려됐다.
이에 따르면 올해 2천199만명인 국민연금 가입자 수는 지속해서 감소해 2050년 1천534만명, 2070년 1천86만명, 2088년에는 901만명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기대수명은 올해 84.3세에서 2070년에는 91.2세까지 늘어 노령연금 수급자 수가 올해 527만명에서 2050년 1천467만명으로 2.8배 증가한다. 2060년에는 수급자 수가 1천569명으로 늘어 가입자 수보다 많아지게 된다.
노령연금은 말 그대로 은퇴 후 노년기에 받는, 흔히 국민연금이라고 했을 때 지칭하는 연금을 말하는 것으로, 국민연금 중에서도 장애인연금, 유족연금 등을 제외한 개념이다.
가입자 수 대비 노령연금수급자 수를 보여주는 제도부양비(比)는 2078년 143.8%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시 말해 돈(보험료) 내는 사람보다 돈(연금 급여) 받는 사람이 더 많아지는 셈이다.
경제변수를 보면 4차 재정계산 때 2.2%였던 2023∼2030년 실질경제성장률이 5차 때는 1.9%로 하락했다. 2051∼2060년 실질경제성장률 전망은 4차 때 0.8%에서 5차 때 0.4%로 반 토막이 났다.
2023∼2030년 실질임금상승률도 4차 2.1%에서 5차 1.9%로 내려왔다. 다만 임금, 물가상승률, 기금투자수익률은 4차 때와 유사한 수준이었다.
◇ 기금 소진되면…2080년엔 보험료율 35% 돼야 연금지급액 충당
국민연금은 현재의 제도를 유지하더라도 앞으로 약 20년간 지출보다 수입이 많은 구조를 유지하면서 오는 2040년에는 최고 1천755조원의 기금을 적립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나라는 국민연금 제도가 1988년에야 도입된 탓에 현재는 '10년 이상 납입' 조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아 올해 기준 65세 이상 인구 대비 노령연금 수급자 비율이 44.0%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수급 조건을 갖춘 노령 인구가 증가하면서 지출이 급속도로 늘게 된다.
이 때문에 2041년을 기점으로 적자로 전환해 15년 후인 2055년에는 기금을 모두 소진하게 될 것이라는 게 이번 추계의 결과다.
최대적립기금 시점을 2041년(1천778조원), 수지적자 시점을 2042년, 기금소진 시점을 2057년으로 전망했던 4차 재정계산 때와 비교하면 적자 전환 시점과 고갈 시점 사이 기간이 16년에서 15년으로 줄어 하락폭이 조금 더 가팔라졌다. 다만 고갈 시점의 '마이너스' 규모는 124조원에서 47조원으로 줄었다.
아직 연금 수급 개시까지 수십 년이 남은 젊은 세대에게는 기금이 소진돼도 연금을 받을 수 있는지가 가장 큰 관심사다.
정부는 '지급 보장 명문화'까지 언급하며 연금을 받지 못할 일은 없다고 밝히고 있다.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은 5차 재정추계 관련 보도자료에서 "이번 재정추계결과 기금소진 후인 2080년에 연금지출은 GDP의 9.4%로, 4차 재정계산 때와 동일할 것으로 추정됐다"며 "2080년 기준 65세 이상 인구가 47.1%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정도 인구에게 GDP의 9.4%가 부담돼 연금을 지급하지 못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지금도 유럽 각국은 연금지출로 GDP의 10% 이상을 지출하고 있고 이중 영국이나 독일, 스페인은 기금이 거의 없지만 그 나라 노인들 중 기금이 없어서 연금을 못받았다는 노인은 한명도 없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기금이 소진될 경우에는 가입자 부담이 지금보다 커질 수밖에 없다.
이번 5차 추계에서 적립기금 없이 매년 보험료 수입만으로 국민연금을 운영할 경우 필요한 보험료율을 보여주는 '부과방식 비용률'은 기금 소진연도인 2055년 기준 26.1%로, 4차(기금 소진 2057년 기준 24.6%) 대비 1.5%포인트 상승했다.
부과방식 비용률은 기금 소진 이후인 2060년에는 29.8%(4차 26.8%), 2070년에는 33.4%(29.7%)로 오르고 2080년에는 34.9%(29.5%)로 정점에 도달한 뒤 다소 내려가는 것으로 전망됐다.
이대로라면 국민연금 직장가입자는 고용주가 부담하는 절반을 제외해도 소득의 약 17.5%를 국민연금 보험료로 내야 한다는 이야기다.
◇ "70년치 추정에 과도한 공포감 조성" 지적도…소득보장 놓칠까 우려
일각에서는 국민연금이 도입 당시인 1988년에도 기금 고갈 시점을 2049년으로 봤다는 점을 고려하면 기금 고갈 시점이 1∼2년 앞당겨지는 것에 대해 그리 큰 우려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급격한 인구구조 변화 속에서 국민연금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는 재정 안정화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곧 기금이 소진돼 연금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지나친 공포감을 조성하는 것은 향후 국민연금 운영 안정성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다. 이미 많은 국가들이 기금 없이 부과방식으로 국민연금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특히 국민연금 재정추계가 70년이라는 장기간에 대한 전망이어서 각종 변수에 따라 상황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고, 정책적으로 재정 안정성을 올릴 방안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예를 들어 부과방식비용률 산식상 분모에 해당하는 부과대상소득총액은 기준월소득 상한액을 인상할 경우 대폭 증가하게 되고, 이 경우 부과방식 비용률은 낮아진다.
또 재정 안정화에 골몰하다가 오히려 노후 소득보장이라는 연금의 핵심 목표를 놓치게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1988년 연금 도입 당시 70%였던 국민연금 명목 소득대체율(생애 평균 소득 대비 연금 수령액 비율)은 현재 43%로 2028년까지 40%로 낮아진다. 수급자 개인의 생애 평균 소득 대비 수급 첫해 연금액 비율은 실질 소득대체율은 20%대로 파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