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자연재난 피해, '하층'이 '중상층'보다 1.8배 많이 경험
비정규직이거나 교육수준·계층인식 낮을수록 "재난에서 회복 못했다"
신종 감염병 회복 위해 소상공인보다 저소득층 지원 의견 많아
사회적인 계층이 낮은 사람일수록 자연재난이나 사회적 재난을 겪을 경우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재난에서 회복하는 데에 힘들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사회에서 재난이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불평등하게도 사회적 약자에게 더 심각한 영향을 주는 셈이다.
국민들은 신종 감염병 재난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전반적인 민생 경제 회복보다는 저소득층에 대한 '핀셋' 지원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19일 발표한 '국민의 건강수준 제고를 위한 건강형평성 모니터링 및 사업 개발 - 위험사회에서의 건강불평등'(김동진 외) 보고서를 통해 이런 내용의 재난 불평등에 대한 인식조사 결과를 소개했다. 조사는 작년 5월 4~12일 만 19~74세 1천837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보고서는 "재난은 자연적이지만 재난 이전과 이후의 상황은 순전히 사회적 현상"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팬데믹에서 콜센터 등 거리두기가 불가능한 조건의 노동자와 요양시설 등 집단수용시설 거주자들은 높은 집단 감염 위험에 노출됐고, '아프면 쉬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불안정 노동자의 현실이 부각됐다. 지난 여름 폭우로 인한 반지하 주택 침수 참사의 희생자는 발달장애 가족이었다.
◇ 재난취약계층, 재난 피해 크고 회복 더뎌…정부 지원 불만 커
재난은 태풍·폭설·지진 등 자연재난과 화재·교통사고·환경오염·감염병·다중밀집사고 등 사회재난으로 나뉜다. 응답자 중 620명과 939명이 각각 자연재난과 사회재난으로 인한 피해를 경험했다.
재난 피해 경험자 중 재난으로 삶에 심각한 영향을 받았다고 답한 사람의 비율은 주관적인 사회계층(자신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어느 정도로 판단하는지에 대한 인식)이 낮은 집단, 사회적 지지를 받지 못했거나 사회를 신뢰하지 않은 집단 등 사회적 약자에서 특히 높았다.
자연재난에서 심각한 피해를 입은 사람의 비율은 65~74세의 52.8%로 19~34세의 37.3%보다 80%가량 높았다. 중졸이하(71.3%)가 대졸이상(47.2%)보다, 주관적 계층 하층(58.0%)이 '중상층 및 상층'(32.3%)보다, 자신이 사회적 지지를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59.8%)이 받는다는 사람(44.0%)보다 높았다.
이런 경향은 사회재난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하층 계층인 사람의 65.7%가 심각한 재난 피해를 입어 중상층 및 상층(52.5%)보다 비율이 높았다. 사회적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경우(63.2%)가 사회적 지지를 받는 경우(51.2%)보다 심각한 재난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컸다.
사회적 약자는 재난 피해로부터 회복도 더뎠다.
전체 자연 재난 피해 경험자의 10.7%가 회복되지 않았다고 응답했는데, 이런 비율은 중졸이하(21.8%), 하층(21.4%), 비정규직(13.9%), 사회적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경우(14.7%), 사회를 신뢰하지 않은 집단(13.8%)에서 특히 높았다.
사회 재난 피해 경험자 중 회복되지 않았다고 한 응답자는 24.1%로, 중졸이하(38.2%), 하층(38.8%), 비정규직(28.4%) 집단에서 응답률이 높았다.
재난 상황에서 정부의 지원이 불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경제적 지원과 보건의료 지원에 대해 각각 70.0%와 40.3%였는데, 하층(83.2%·51.3%), 사회적 지지 받지 못함(82.9%·54.8%), 사회를 신뢰하지 않음(77.1%·47.7%)이라고 답변한 집단에서 특히 응답률이 높았다.
◇ 응답자 72% "국가 대응능력 부족"…재난경험자 78% "자원배분 불공정"
사회적 약자 집단은 정부로부터 지원뿐 아니라 사적인 네트워크를 통한 도움도 얻기 힘들어했다.
연구진은 4가지 경우를 제시하며 조언이나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물었는데, 주관적 계층 하층 가운데 이 중 1개도 해당 사항이 없거나 1개뿐인 사람이 40.6%에 달해 중하층(24.8%), 중간층(14.0%), 중상층 및 상층(13.1%)보다 훨씬 높았다.
한편, 이번 설문에서 응답자들의 상당수는 재난 상황시 자원배분이 불공정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재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우리 사회의 자원 배분 과정에 학연, 지연, 혈연 등 연고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 응답자는 재난 경험자의 77.8%, 재난 미경험자의 72.8%에 달했다. 재난 경험자의 73.2%, 미경험자의 66.2%가 재난 발생시 정부가 금전적인 지원과 도움을 공평하게 배분하지 않을 것이라고 응답했다.
전체 응답자(재난 경험자+재난 미경험자)의 64.9%는 재난 예방과 대비에서, 65.2%는 재난 발생 후 대응·복구에서 국가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답했는데, 72.1%는 국가와 우리사회 전체의 재난 대응 능력이 부족하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재난 복구에서 중요한 일로는 민생경제 회복이나 전 국민 재난지원금 같은 전 국민 대상 지원 정책보다는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을 꼽는 응답자가 훨씬 많았다.
신종 감염병 상황을 제시하고 재난 회복 단계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지원해야 할 정책을 고르도록 했는데, '생계가 어려워진 저소득층에 대한 복지 지원'(48.5%), '건강 취약계층에 대한 의료서비스 지원'(47.8%)이라는 응답이 많은 반면 '침체된 지역의 민생경제 회복 지원'(30.4%), '전 국민 재난지원금 추가 지급'(24.4%), '매출 감소 피해에 대한 소상공인 회복지원'(19.9%)이라는 응답은 적었다.
보고서는 "재난이 사회구조적인 불평등을 더욱 강화시킨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며 "취약계층의 재난에 대한 취약성을 보완해주고 재난 발생 시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