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전 광주 서구 양동시장 초입. 38년째 채소를 파는 이경남(84) 씨는 고단한 얼굴로 손님을 기다렸다.
이씨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이후 단골도 끊기는 등 요즘 장사가 영 신통치 않다며 혀를 끌끌 찼다.
마침 찾아온 손님이 고추 가격만 묻고 돌아서자마자 이씨는 거스름돈으로 준비한 천 원짜리 지폐 뭉치만 하릴없이 세고 또 셌다.
옆에 있던 상인 최경남(68) 씨는 "기다리는 손님은 안 오고 파리만 날리고 있다"며 계속해서 볼멘소리를 해댔다. 그래도 최씨는 진열된 황조기 위에 얼음물을 연신 끼얹고, 명태 묶음 쪽으로 선풍기 바람을 돌리는 등 몸을 부지런히 움직였다.
시장 길목 구석에 둘러앉아 쪽파를 다듬던 서너 명의 아낙은 "지난해 추석에는 제법 장사가 됐는데...올핸 메르스 때문인지 손님이 뚝 떨어졌다"면서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을 찾은 손님들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아침부터 시장을 찾은 손님들도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보지만, 호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때문인지 빈손들이 대부분이었다.
얼핏 보면 추석을 1주일 앞둔 양동시장은 제수용품을 사러 온 시민보다 손님을 기다리는 상인들 수가 더 많아 보였다.
주황빛 보안등 아래로 군데군데 물웅덩이가 고인 양동시장의 골목에서 활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올 초부터 이어진 경기 부진과 메르스 불똥에다 최근 조류인플루엔자(AI)까지 악재가 겹치면서 양동시장의 경기가 꽁꽁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은 침통한 표정을 한 상인들의 얼굴에서 읽을 수 있었다.
가뜩이나 최근 발생한 AI로 가금류의 이동이 중단돼 꼼짝없이 가게 문을 닫게 된 생닭과 오리 판매점의 타격은 더욱 컸다. 대목을 코앞에 두고 된서리를 맞은 이들 가게주인의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갔다.
생닭과 생오리 판매점 10여곳이 밀집한 '닭전머리'는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겨 적막감만 감돌았다.
한 생닭집 주인은 "그동안 경기가 나빠서 고생 고생했는데…. 명절 직전에 생각지도 않던 AI가 닥쳐 어찌해야할 바를 모르겠다. 한마디로 앞이 캄캄하다"며 고개를 떨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