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대학 입학정원 논의가 파열음을 더하고 있다. 전국 40개 의대를 상대로 한 정부의 입학증원 수요조사 결과가 나오기 무섭게 대한의사협회가 총파업 불사를 위협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 의협 협상단은 정부의 의대 증원 수요조사 발표 후 처음으로 22일 정부 측과 마주 앉았으나 대립각만 세웠고, 회의는 10분 만에 파행으로 끝났다. 의협 측은 수요 조사의 타당성을 문제 삼으며 "고양이(대학)한테 생선이 몇 마리씩 필요하냐고 묻는 것"에 비유하기도 했다. 의협이 시작부터 강공에 나선 것은 기선을 제압해 최대한 실리를 거두려는 협상 전략의 일환일 수 있다. 그러나 제대로 논의가 진행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최후의 수단 동반 강경투쟁" 운운하는 태도는 지나치다.
의협은 "논리적이지 않고 비과학적인 수요조사 결과"라며 정부의 조사를 여론몰이로 규정했다. 대학에 의료 접근성 등 건강 지표를 제시하지 않고 의사가 부족한지 물어봤다는 게 부당하다고 말하는 논거다. 하지만 정부의 수요조사는 각 의대에 '학생을 얼마나 더 뽑아서 가르칠 수 있느냐'고 학교 사정과 형편을 물은 기초 조사였을 뿐이다. 조사 성격을 둘러싼 논란을 떠나 병원 인력, 특히 필수의료 분야 의사가 부족하다는 데는 의사들도 동의하고 있을 것이다. 인구 1천명당 의사수가 2.6명(2021년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3.7명보다 훨씬 낮은 현실을 재삼 거론하지 않더라도 지방의 의료 체계는 황폐해진 지 오래다. 의협은 의대 증원 반대 이유 중 하나로 인구감소세를 들고 있지만, 이주민 유입에 맞춘 친이민 정책 기조를 감안하면 증원을 통해 인구 고령화에 대비하는 게 중요하다.
의협이 말하는 '최후의 수단'은 2020년 총파업을 뛰어넘는 초강경 투쟁이라고 한다. 당시 문재인 정부는 의대 정원 400명 확대, 기존 정원을 활용한 공공 지역 의사제 도입, 비대면 원격 의료를 추진했으나 의사들의 집단 휴진과 의대생들의 극한 반발로 무산됐다. 의료계는 이번에도 3년 전과 같은 방식으로 의대증원 시도를 저지할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이런 이기주의적 행태에 대한 국민의 인내가 임계치를 넘었음을 직시해야 한다. 의료계는 파업 으름장 대신 필수의료 공백을 해소할 수 있는 나름의 대안이 있다면 서둘러 제시하고 이견을 좁혀나가는 것이 책임 있는 자세라 할 것이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23일 '지역 필수의료 혁신 태스크포스(TF)' 첫 회의에서 대학입시 일정을 들어 내년 1월까지 적정 증원 규모를 확정해달라고 주문했다. 정부는 수가 인상과 근무 여건 개선 등 필수의료 현장의 목소리를 최대한 정책에 반영하면서 의협과의 증원 협상에 속도를 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