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가 올라도 너무 올랐어. 손님이 뚝 떨어져 마수걸이(첫 장사)를 못 할 때도 많고…. 체감상 작년 이맘때보다 40% 정도 오른 거 같아."
추석을 2주가량 앞둔 2일 오후 현금 20만원을 챙겨 전북의 대표 전통시장인 전주 모래내시장을 찾았다.
이곳에서 만난 상인과 손님들은 한목소리로 확 뛴 물가에 혀를 내둘렀다.
우선 제사상에 가장 필요한 과일을 사고 시장 분위기도 파악한 겸 과일 상점에 들어갔다.
장사가 잘되냐고 묻자 상인은 긴 한숨부터 내쉬었다.
제법 굵직한 사과(부사) 1개가 5천원이었고 배는 이보다 비싼 7천∼8천원이었다.
자두는 ㎏당 1만원이었고, 여름이 지나가 곧 들어간다는 복숭아는 4㎏ 한 상자에 3만5천원 정도였다.
주인 강순덕(75)씨는 "여기서만 40년 넘게 장사했는데 요즘처럼 장사가 안되는 경우는 없다"라고 토로했다.
그는 "올여름 배가 햇볕에 데어 15㎏ 한 상자가 20만원까지 올랐었다"라며 "수십년간 장사한 나도 놀랐는데 손님들은 오죽할까 싶다"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가게에서 만난 60대 주부는 한참 동안 사과를 들었다 놓기를 반복하더니 결국 자두 1만원어치만 샀다. 그는 "사과 한 개가 5천원이니 어떻게 마음 놓고 먹겠냐"면서 발걸음을 돌렸다.
사과를 살펴보던 김모(58·여)씨는 "가격이 다 비싸니 이번 명절은 배달앱으로 음식을 시켜 먹는 게 싸고 편하겠다"라면서 진담 같은 농담으로 거들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시장통의 그 흔한 흥정의 풍경조차 찾기 어려웠다. 가격을 확인한 손님들은 그대로 물건을 내려놓고 발길을 돌리기 일쑤였다.
4만원을 주고 부사 4개와 배 3개를 산 뒤 어물전에 들렀다.
길이 20㎝가량의 조기 7마리는 3만원에 팔렸다. '국민 생선'인 고등어는 한 손(2마리)에 7천원, 꽃게는 ㎏당 1만5천원이었다.
홍어는 마리당 3만∼7만원, 갈치는 마리당 1만∼2만원으로 평상시와 비슷했다.
주인 함경순(53)씨는 "추석 대목을 앞두고 이맘때부터 생선류가 많이 팔리는데, 아직 한가하다"며 "생선류는 채소와 과일보단 가격 변동이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육점으로 향했다.
국거리용 소고기 3만원어치를 달라고 했더니 양이 어른 주먹만 했다. 600g이 채 안된다고 했다.
주인은 "더위가 가시질 않아 매출이 30% 이상 떨어졌다"라고 짧게 말했다.
떡집에선 소포장한 떡을 한 팩에 3천원씩 팔았다.
주인 안금자 씨는 "물가가 많이 올랐어도 떡 가격은 큰 변동이 없다"라며 "우리 가게에서는 수년 전부터 한 팩에 3천원씩에 판다"고 귀띔했다.
채소가게를 슬쩍 훑어보니 고추 4개에 2천원, 오이 4개에 2천원, 새송이버섯 한 봉지에 2천원, 양파 한 망에 5천원씩에 판다는 푯말이 붙어 있었다.
여기저기 들러 이거저거 사다 보니 준비한 20만원은 2시간 만에 동이 났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조사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기준 사과(홍로) 소매가격은 10개에 2만5천622원으로 작년 이맘때와 비교하면 22.7% 내렸고 평년보다 12.4% 싼 것으로 나타났다.
평년 가격은 2019년부터 작년까지 가격 중 최대·최소를 제외한 3년 평균이다.
반면 배(원황) 소매가격은 10개에 3만2천607원으로 1년 전, 평년과 비교해 각각 17.1%, 9.8% 비싸다.
배추 소매가격은 한 포기에 6천455원으로, 출하량이 늘면서 1주일 만에 값이 11.6% 내렸다.
무 소매가격은 1개에 3천718원으로 1년 전, 평년과 비교해 각각 38.7%, 42.1% 비싸다.
aT의 조사 내용과 다르게 전통시장에서는 물품 가격이 모조리 오른듯했다.
시장에서 만난 과일 상인을 비롯한 손님 10여명은 특히 사과의 경우 가격 하락을 실감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불경기에 긴 폭염, 폭우까지 겹치면서 전통시장의 소비심리는 꽁꽁 얼어붙었고, 이래저래 서민들의 주름이 깊어지는 듯 했다.